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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별 수업 (양장)





 




이별 수업 (양장)
폴라 다시 지음 | 이은주 옮김
청림출판

1.
   지금 나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있다.  세상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트 간이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버스, 차량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아직 붙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국에는 생각이 그렇게 조급했을 뿐이라는 것, 지금 이 순간은 어의없게 평온하다.  삶이란 결국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일 때가 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삶은 무미건조한 회색빛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벌써 한 달째 붙들었다 놓고 놓았다가 잊고 어느 순간 다시 생각나서 집어들고 있는 쪽을 수는 50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할까. 모리가 아니라 이 책이 한동안 많이 서운했다고 생각할까. 그 모든 생각은 나에게서 비롯된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아직 오지는 않고 있다. 


2. 
   <이별수업> 이 책을 나는 <상실수업>, <인생수업> 연장선에서 읽어야겠다, 그런 짐작으로 펼쳤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언뜻 책소개에서 보았지만 유사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 '수업'이라는 단어 하나에 나는 더 집착했다. 배우고 싶었다. 많은 것 아니더라도 삶에 있어 조금 편안해지기를, 이 생각은 곧 내가 조금이라 만족하며 세상에 원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또 앞으로 빈번하게 결핍과 불만족, 그리고 분노가 일상 곳곳을 침해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삶은 내성을 조금 더 기르는 연습장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손님일 뿐이다. 

   <이별수업>은 심리치료사, 상담사가 수필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은 모리 교수가 아니다. <이별수업> 한 부분을 채우고 있는 모리 교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여느 인물과는 달리 어느 정도 유명짜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른다는 뒤처짐에서 오는 소외감은 때때로 당혹하다. 유명하다니 나는 꼭 알아야만 할 것 같다는 강박감에 휘청댔다. 그래서 루게릭병에 걸려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는 모리 선생의 이야기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있다. 읽기 쉬운 책인데도 나는 지독하게 이 책을 멀리두고 있다. <이별수업>을 다 읽고 덮어둔 지 벌써 몇 주가 지난 뒤에 글을 남기듯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도 장기전에 돌입하고 말았다. 나는 왜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일까. 


3.   
   <이별수업>은 상담자가 주인공이다. 내담자로 모리 교수와 그외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주인물은 상담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은 상담자로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만하다. 직면은 참혹하지만, 무시 못할 힘을 길러준다. 견디기 힘들지만 겪고 나면 의연해진 자아상을 목격하게 된다. 곧 <이별수업>은 상담자가 보내지 못한 사람들에, 죽은 사람들에게 고하는 극기의 방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상담의 승패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거리에 있다. 적절한 거리에서 내담자는 반응하고 변화하고 성장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성장과 변화는 무엇일까. 내가 죽음에 맞닥뜨렸을 때 나는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너무 아득한 일이라는 거만이 고개를 쳐든다. 대문밖이 죽음이라는, 이제는 눈 뜨면 죽음이라는 소리를 일삼으면서도 현실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힘든가 보다. 

   <이별수업>은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글쓴이가 늘 평상심을 유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상담자 자신도 인간적인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편안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심연으로 가라앉듯이 몸이 묵직해졌다가 책속에서 고개를 들면 가쁜 숨을 토하듯이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그렇게 자맥질을 무수히 반복한, 그렇게 살아남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별수업>은 상실이 아니다. 그 장면, 죽음의 경계에 선 산 자(사람)과 사자(죽은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 관계 속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감정은 변화무쌍하다. 감정은 하나의 경험이다. 무수한 감정 가운데 우리가 어느 유형에 집착하느냐에 따라 행동은 극단적으로 바뀐다. <이별수업>은 상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우리의 감정에 대해서 '그대로 보여주기'를 하고 있다. 짧은 글, 이야기글 형식의 <이별수업>을 그대로 보면서 우리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 모리 교수가 아니라, 상담자의 행동에, 심리상태 관심을 둘 때 <이별수업>은 진가를 더한다. 


4. 
   나는 무수히 많은 버스를 그냥 보내버렸다. 그 버스를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환(key18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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