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송찬호 지음
중앙BOOKS
인상깊은 구절
- 바람의 터번이 다 풀렸고나 가을이 길어간다 (송찬호/코스모스 中)
- 허물 벗은 뱀은 제 허물이더라도
벗은 허물 다시 껴입을 수 없는 것을! (김명인/독창 中)
- 모자 때문에 나는 감상적이야. 절제하지 않아. 모자가......모자를......
어떻게 모자를......나는 똑같은 모자를 열 번 쓰는데, 모두 다른 모자들이야.
어떻게 슬프지 않겠니? (김행숙/모자의효과 中)
- 문 열고 나서면 아픈 사랑투성이이고
마흔을 넘긴 내 몸도 사랑으로, 이상한 사랑으로
온통 결리고 쑤신다 (이영광/이상한 사랑 中)
-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이원/그림자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미당 서정주 시선집 - 서정주 지음
식당의 자 - 문인수 외 지음
김혜순 모래 여자 - 미당 문학상 수상작품집 2006 - 김혜순 외 지음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시를 읽었다.
어느 자기계발서에선가 발견한,
'창의력을 기르려면 시를 많이 읽어라'라는 권유 때문이었다.
미당 서정주, 그의 시 역시 고등학교 때 국어책과 문학책, 수능예상문제집 등에서 줄곧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자화상>,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구절이 아직도 기억나는 <국화옆에서>, 처음엔 그저 송창식씨의 노래인줄로만 알았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구절이 인상적인 <푸르른 날>, 단 두 문단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아련함과 오만 가지 감정, 감탄을 자아냈던 <신부>, 문제집에 곧잘 나왔던 <귀촉도>....등등.
당시 시 자체를 온전히 오감을 다해 느끼기 보다는
이 단어는 무얼 의미하고, 저 단어는 어떤 의미를 내제하고 있으며,
그 단어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둥
문제의 정답을 맞추기 위해 암기하며 공부를 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누가 쫓아오는 사람도 없고, 그냥 차분히 읽어가면 되는거야.'라며 스스로를 응원하고 책을 열었다. 평소 자기계발서나 소설을 초스피드로 읽어치우던 습관이 몸에 깊이 배어있어서인지, 차분하게 시를 즐기고 행간에 숨은 의미를 음미하고자 속도를 줄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속으로 '천천히 천천히', '만만디 만만디'를 외치며 나 자신의 고삐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아직 완벽한 컨트롤을 하진 못해 어떤 시는 다급히, 어떤 시는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읽어본 시. 왜 그 자기계발서의 저자가 그토록 '시를 읽으라'며 열성적으로 권유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A라는 단어 뒤에 빼꼼히 고개내밀고 있는 B와 C의 의미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을 다해 그 시에 풍덩 빠져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A라는 질문에는 늘 A라는 답을 골라내는 고질병에서 벗어나 여러 방향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그 기분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 자유로움은, 백날 설명하는 것보다 실제로 시를 한 번 마음열고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다른 독자들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이 책 맨 앞에 있는 심사위원들이 작성한 '제8회 미당문학상 수상작 발표'라는 심사평은 맨 마지막에 읽으라는 것이다. 아직 미성숙한 독자인 나의 경우에는, 이 심사평에 언급된 시들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하게 되었고 필요이상으로 오래 눈길을 두며 다른 어떤 시들을 쉽게 지나쳐버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선입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이 책에 실린 많은 시들을 오감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노란지붕(real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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