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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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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에서 길을 잃다
차현숙
이룸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때론 위험하다. 특히 글을 잘 쓰는데 우울한 사람은 더욱더 위험하다. 표현되지 않는 확실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를 글 속에서, 노래 가사 속에서 발견해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풀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되지 못할 땐 오히려 역효과다. 확인사살이 얼마나 무섭고 경험하기 싫은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냥 읽는 내내 어렴풋이 짐작이 될 뿐이었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겠구나...글로 자신을 작품에 투영시켜 놓고 어쩌면 한 꺼플 한 꺼플  벗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런데 양파같아서 벗겨도 벗겨도 원인만 나올 뿐 거기서 거기더라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고통에서 벗어날 권리가 내게 있다" 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정말 벗어났는지에 대한 해답은 불분명하다. 벗어나는 방법의 선택 역시도 자살시도, 고립 등 다양하지만 역시 어두움이기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끝도 없고 빛도 없는 터널 속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한 명이었을지 모를 주인공이 각각 다른 이야기의 다른 한 명이었다니...뭐 아무렴 어떠랴...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은 이 소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니까.

우울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우울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읽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우울증을 앓는 것이 주인공의 삶이고 고통이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준 사람이 작가라면 치유할 수 있는 사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작가이어야하는데, 그럴 생각을 크게 내비치기가 싫었던지 아주 조금씩 감추어 두었다. 게다가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마음의 병을 앓는 대가로 위로는 커녕 모진 시련들과 풍파들을 겪어내고 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굴레 속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관계 속에서, 과거의 쓰라린 경험 속에서...말라가는 상처를 찢고 소금을 뿌리고 혀로 핥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인간의 관계란 것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겐 필요악일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자신이 존재할 수 있도록 씨를 준 아버지에게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모성애라고 하지 않았나...그런데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사랑하고 기대고 싶어서 낳은 자식에게서, 영원히 뿌리치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주인공들을 보며...슬펐다. 이 시대의 그늘진 현실을 얘기해서 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주 오랫동안 우울증과 그 밖에 정신과 의사들이 둘러치고 매치는 여러 증상들을 복합적으로 겪고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작가가 진단해낸 정신병의 근본적인 원인과 증상들 -물론 본인이 겪은 것이기에 사실적일 수 밖에 없겠지만 그렇다할지라도 저 정도로 분석해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드문 일이므로- 은 읽는 내내 놀라웠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은 과거의 어떤 충격을 통해서, 혹은 상처를 통해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주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보이는 현상이고 원인일 뿐, 진짜 영적인 문제의 근본 뿌리는 가문이고 혈통이다. 부모와 그 조상들의 육체적인 병들도 후손들에게 그대로 유전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정신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있는 영적인 DNA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정신병의 발병이 훨씬 쉬워지는 것이다. 인류가 짓지도 않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 바로 원죄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작가는 그 얘기를 소설속에 설득력있게 녹여냈다. 그리고 그 영적인 저주를 꺾기 위한 주인공들의 처절함 속에 자살이라는 주변인들을 애태우게 만드는 묘수를 배치해놓았지만 나는 정말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다, 와 죽을 뻔 했다...는 엄청난 차이다. 실행했지만 미수에 그쳤다면 신에게 물어야한다. 내가 왜 살아있어야하냐고, 그리고 찾아야 한다. 내가 살아있어야할 이유를. 인간은 채워야 행복해지는 존재이다. 부모도, 친구도, 돈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행복하다. 욕심을 비워라, 마음을 비워라, 허다한 종교들이 외쳐대지만 마음을 비운 사람들이 채우지 못해 죽어가는 것이다. 욕심이라도 채운 사람은 억울해서라도 죽지 못한다. 작가의 다른 글은 읽지 못했지만 채워나가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다른 글을 소망하고 그려본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삐리리(tazzo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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