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소로스,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조지 소로스 지음
위즈덤하우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니 금융계에 대형뉴스가 시끌벅적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후폭풍이 언제 가시화될까 전전긍긍하던차에 미국발 뉴스는 이게 시작은 아닐까하는 염려부터 생기게 한다. 리만브라더즈가 파산보호신청(우리나라로 하면 법정관리정도 된다고)을 하고 메릴린치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매각되었다는 소식이다.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 즉 우리나라에서 보험사로 인지되어있는 AIG도 파산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미국의 주요은행들에 대해선 가끔씩 해외뉴스를 통해 들었을 뿐이고 이들이 우리의 경제와 어떻게 얽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막연히 짐작정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국내의 금융기관들도 아니 투자기관들도 영향권에 들어 그 결과가 요주목되는 시점인 듯하다. 국민연금도 만만찮은 손실이 예상된단다.
이런 뉴스를 접하고 마침 최근에 읽은 소로스의 이 책 37쪽에서 그가 읊고 있는 미국 은행들의 2007년, 2008년 분기별 대손상각계획발표 관련 부분의 글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예상했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은행이고 증권사고 직원들이 하는 말은 아직 다 드러난 건 아니다라는 말이었지 어느 은행이 어떻게 파산지경이란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왜 진작 소로스의 책을 보지 않았던가.
투자의 귀재, 헤지펀드의 대가 등등 그를 칭하는 말은 다양하다. 우선 최근에 그에 대한 정보로는 그가 중국시장에서 철수를 권유하고 자신은 아예 중국쪽은 완전히 정리하고 나왔다는 말을 했다는 것, 그리고 이제 세계 금융시장은 슈퍼버블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 말하자면 그는 종말론적이고 비관적인 입장에서 세계금융시장을 조망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전정보를 가지고 대체 그는 어떻게 세계경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는지 책을 읽어나갔다.
그가 말하는 재귀성(reflexivity)이론은 학계로부터 냉정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의 대부분을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고 적용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그의 이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상황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 상황에 관계한다는 것은 두가지 상이한 기능을 수반하는데 여기에 인지적 기능과 조작적 기능이 수반된다. 즉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인지적 기능과 상황을 자신에게 이롭게 변화시키려하는 조작적 기능이다. 이 두기능이 동시에 작동할때 현상은 미래에 대한 의도와 기대까지 포함하고 이 때 미래는 참여자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판단은 지식에 근거한 것으로 볼수 없고 현실속에서 미래에 대한 참여자들의 의도와 기대때문에 양방향의 관계가 형성되고 이 양방향의 간섭을 재귀성이라고 한다. 어떤 특정사건에 대한 기대치와 실제 상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재귀적 상황의 특징이다.
이렇게 설명이 되고 보면 그의 이론은 철저히 투자가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미래예측으로 주식을 사고 팔지만 이건 순전히 예상의 결과이지 지식이 아니란 말이다. 손실을 본 투자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끄덕거릴법도 한데 세계의 큰손인 그가, 즉 그가 말한 지식이 아닌 예상으로 투자에서 거액을 손에 쥔 장본인이 되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면 금융시장의 논리란 감각적인 것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일까. 어찌되었건 숱한 시간 실제 시장에서 투자의 주인공으로서 활약한 그의 완벽한 경험적 결론임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고전주의 경제학은 시장참여자들이 완전한 지식에 근거해 결정한다는 완전경쟁이론(균형이론)에 입각하여 시장을 설명하였다. 모든 경제주체들은 가능한 모든 정보에 근거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하지만 소로스는 시장참여자들이 지식에 근거해 결정을 내릴 수 없으며 재귀적 연관성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개입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론의 정당성을 중점적으로 설명한 1부에 비해 2부는 최근 금융시장의 위기와 전망을 피력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슈퍼버블 가설은 설득력이 있어보였다. 소로스는 1980년대에 자유방임주의가 다시부활함으로써 슈퍼버블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마가릿 대처와 레이건의 시대는 우리의 군부정권시대와 맞물려지는데 나는 한국의 IMF금융구제시기가 순전히 국내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는 국제적인 경제 이념과 연계되어 저질러진 방만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쩄든 소로스가 말하는 슈퍼버블의 3가지 핵심추세(신용팽창의 장기추세강화, 금융시장의 세계화, 시장감독의 점진적인 약화와 금융시스템 혁신의 가속화)를 이해하면 지난 몇년간의 미국내 금융위기를 조장한 갖가지 형태의 신종 금융상품들(부채담보부증권 등)의 남발과 폐해의 과정이 한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는 1부에선 실패한 철학자로 2부에선 성공한 투기거래자로 자신을 묘사하였다. 자신의 이야기(일대기)를 이렇게 대조되는 말로 표현했다. 다시 말해서 경제이론가로서 자신은 세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투자자로서는 성공했다는 말이다. 이 책에는 소로스 개인의 이력과 그의 아버지이야기, 아들의 생각이 잠시 엿보이고 있다. 아들조차도 자신의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투로 말한 사실을 너무나 당당하게 인용문으로 싣고 있는 필자가 다소 자조적으로 보이지만 성공한 투자자의 삶은 결코 누추해보이지 않는다. 그가 전해주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진상은 너무나 솔직하고 요긴한 것이다. 꾹 묻어두면 언젠가는 이득을 본다는 원칙이 미덕인지 아닌지는 투자자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다. 그렇다고 그 결정이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예상일뿐이라는 소로스의 말은 결코 부정하기 어렵다.
세상경제가 파토나고 어려운 일만 벌어질 거라는 생각은 소액투자자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버블의 심화과정에는 언제나 자기강화(이를테면 신용팽창)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지금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시점이 혹 그 자기강화의 단계가 아닌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소로스의 책은 우리로 하여금 과유불급의 적나라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도록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구름산책(fj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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