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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천재가 된 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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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된 제롬
에란 카츠 지음 | 박미영 옮김
황금가지

사실 이 책을 읽기 사작할 때는 저자인 에란 카츠(Eran Katz)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 문득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천재적인 기억술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개인 홈페이지가 있어서 가보았더니 자신을 소개하는 메뉴에 "The Memory Artist"라는 명칭을 붙여놓았다. 그 메뉴에 적힌 저자 소개를 보니 재미있는게 많았다. 어린 시절 키부츠 농장에서 일하며 거기 있던 수많은 소의 이름을 다 기억했다던지, 군대에서 레이더 병으로 근무할 때 수많은 주파수 교신대역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에 때맞춰 작년에 우리나라에 방한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가 그렇게 뛰어난 기억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이 책의 서술 내용 중 절반 정도는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본 이 책은 그 이상의 것을 주고 있다. 즉, 단지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태인식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이 책의 머리말에 서술되어 있듯이 무신론자에게는 책 내용이 지나치게 유태인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학교 예시바를 비롯해, 트필린이나 찌찌트같은 종교적 도구나 장식물들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이 무척 많이 언급되고 있다.

책 제목인 "천재가 된 제롬(Jerome becomes a Genius)"에서 알 수 있듯이 호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 이스라엘로 와 살고 있으며 정통 유태교도를 꺼려하는 제롬이라는 저자의 친구와 함께 유태인식 사고 방식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의 내용은 줄곧 대화식 또는 소설식 이야기 전개라서 독자들이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는데다가, 제롬이라는 인물이 농담도 잘하고 매우 재치있는 약간 괴짜 기질의 사람으로 묘사되어 더욱 재미가 있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인 제롬을 비롯해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진짜 이 책의 저자와 관련된 실제 인물인지 아니면 가상의 인물인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이 책은 잘 짜여진 소설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유태인이라면 모두 똑똑하다는 일종의 선입견에서부터 출발한다. 왜 그런 선입견을 일반 사람들이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유태인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두뇌 활용면에서 진짜 다른지에 대해 유태인의 역사와 인물들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첫번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면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몇 가지 이유들은 다른 유태인 관련 책속에서 나오는 내용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좀 더 설득력있어 보인다.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유태인식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은 대개 두뇌를 자극하는 다양한 방법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또한 유태인의 지난한 역사속에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라 할지라도 그것을 꿈꾸고 상상하라는 것이 하나의 사고방식인데, 이것은 두뇌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다른 종교들에서 신의 모습은 구체적이며 형태를 규정할 수 있지만, 유태인들은 공통적으로 구체적인 하느님의 모습이 없고 그냥 자기 상상속에서 그려낸다고 한다. 즉, 종교적 박해가 심했고, 현실적으로 안주하고 기댈 곳 없는 유태 민족의 역사속에서 단지 그들 머릿속의 상상력을 통해 의지할 신의 모습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 속의 주인공 제롬도 은행에 5000만 달러의 잔고를 가지는 것과 경영학 공부를 하겠다는 매우 높은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한 뒤 그를 실천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 곳에 머무르지 말고 늘 방랑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적응하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현실에 안주하여 적응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 인간의 개성과 지성을 발전시키는 데 장애물이 된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유태인들은 그들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어느 한 곳에 정주할 공간을 가지지 못했기에, 늘 떠날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대비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대도시에 몰려 살았다는게 그들의 지능을 높여주었을것이라 하는데, 도시 생활이 자극에 대한 빠른 반응을 요구하고 생존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도시생활자가 시골생활자에 비해 지능이 높을거라는 이 책의 주장이 참신하게 받아들여지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이 끝없이 의심하도록 가르치는 유태인들의 독특한 교육방식도 한 몫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교육을 중요시 하면서도 질문과 토론 위주의 교육방식을 고수해 왔는데, 이 책에서 종교학교인 예시바의 교육 모습을 묘사한 대목은 사뭇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친구들끼리 서로 싸우듯 큰 소리로 자기 주장을 열변하는 것과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몸을 움직여가면서 토론하는 모습이 독특했다. 사실 유태인식 교육방법은 몇 권의 책을 읽어보아서 익숙한데,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자신이 배우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라는 그 학습 태도가 역시 그들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배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할 스승들이 많다는걸 전제로 한다.

즉, 유태인은 사방에서 멘토를 찾는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랍비라고 하는 종교적 지도자들이 공동체마다 많은데다가 자기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보고 배울점을 찾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 높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생존 지능을 높여왔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나 불투명한 현실에 적응하는 능력이 빠른데, 이것은 유태인들이 항상 자신들의 사고를 열어두고 주변의 사람과 사물들을 예리한 감각으로 살피며 지속적인 모방과 개선을 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어쨌든 유태인들의 역사와 전통이 남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집단 지성도 오랜 역사를 거치며 그렇게 변해왔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또한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강한 동기부여가 기억력을 높여주며, 필사행위 자체도 공들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흰 종이에 검정 글씨로 글자를 써서 시각에 강한 대조점을 주고, 글씨 사이의 여백을 두어 가독성을 높이며, 종이를 2단으로 나눠 쓰면 읽기나 쓰기를 할 때 눈이나 손의 움직임이 덜하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또한 공부 등을 할 때 자기가 집중할 수 있는 장소를 찾고, 공부하는 내용에 대해 자기만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하며, 키워드를 암기한다던지, 앞글자만 따서 이미지화 하거나 연상할 수 있도록 하는 기억력 증진법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유태식 외국어 공부법이라고 해서 서술해 놓은 것은 재미있었다. 히브리어나 이디시어 등등 그들의 언어적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여기저기 다른 언어들에서 차용한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그 언어적 기원을 연상하는 것으로 단어의 뜻을 파악하고, 그 단어들을 손쉽게 외우기 위해 외국어를 모국어와 섞어 쓰라는 것이다. 즉 딸랑 단어의 뜻을 외우지 말고 전체 문맥속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어구조가 다른 영어를 배울 때 이 원리를 그대로 써먹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콜린스 코빌드 영어사전으로 공부하듯 문맥속에서 단어를 외우라는 말은 그래도 타당할 듯 싶다.

어쨌든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들은 책 마무리의 에필로그에 잘 정리되어 있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인 제롬이 정리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책의 내용은 매우 유익하다. 특히 유태인의 생활 모습과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기억력 향상법 자체는 비슷한 책들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이 책의 저자가 그랬듯이 생활속에서 직접 실천하고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하는것이 중요할 듯 싶다. 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지만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생활하다보면 그런 기억력도 감퇴되는 것 같다. 나름대로 자신을 돌아보고 또한 두뇌를 새로운 방법으로 자극 할 수 있는 촉매제들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kangsc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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