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문학상 작품집(2008)
정미경 지음
중앙BOOKS 2008.09.25
인상깊은 구절
- 나는 포주였다. 과연 나는 포주였다, 라고밖에 쓸 수 업는가.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 나는 포주였다, 라고 쓰기 이전부터. 글은 얼마든지 다시 고쳐 쓸 수 있다. 인생은 다시 고쳐 쓸 수 없다. 글 역시 다시 고쳐 쓸 수 없다. 다시 고친다고 해도 나는 포주였다, 라고 시작하는 글이 되고 말 것이다.
(김태용/포주 이야기 中)
-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그 사람들처럼 거리로 나가 싸워야 했던 걸까? 그때 그러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난,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어. 사람들이 싸우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 재미있는 것들이 우리를 구원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게 뭐야? 창피하게 이게 뭐냐고? 이렇게 살다가 그냥 죽어버리라는 거야?
(윤이형/큰 늑대 파랑 中)
- 너도 한 번 해보렴, 아가야. 그러면 바람이 조금 덜 무서워질 거란다. 이름을 지어주어야지 낯설지 않지. 그냥 바람, 이라고 부르면 너무 메마르고 차갑고, 일찍 끝나버려, 언제 어디서 또 튀어나올지 알 수 없잖니. 네 엄마는 그렇게 바람을 이겨냈단다.
(이기호/목련바람 中)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독짓는 늙은이 - 황순원 지음
소나기-다시읽는황순원1 - 황순원 지음
명두- 제6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2006 - 구효서 외 지음
1. 황순원의 대표작 <소나기>, 모두들 그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 죽기전에 자기가 입었던 옷을 꼭 입혀서 묻.어.달.라-니. 소년의 아버지처럼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라고 넘기기엔 뭔가 으스스한 느낌을 받았다.
<독 짓는 늙은이>도 그랬다. 다른 이들은 '장인 정신'에 찬사를 던졌지만, 책 내용에 푹 빠져 상상하며 읽었던 난 이번에도 역시 무서워서 움찔하고야 말았다. 깨진 독을 대신해서 뜨거운 가마 속으로 들어가다니...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인공 송영감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만 보였다. 난 그냥 윤오영님의 '방망이 깎던 노인' 정도가 딱 좋다.
2. 이번에 읽어본 <2008 황순원문학상 작품집>, 독특하게도 제목이 '수상작품집'이 아닌 '작품집'이다. 심사위원들이 고심하며 논의하였지만 결국 최선의 선택을 위해 유보하고 수상작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흥미로왔다. 책을 읽었다. 헉-이번에도 역시 소재가 다들 심상치 않다. 연쇄 살인사건, 포주, 무림고수, 좀비가 되어가는 사람들...그 외 온갖 사건사고들. 서슬퍼런 칼날이 독자의 눈앞에서 쨍하고 빛을 내고 휙휙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는 듯,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독자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드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사실 난 이런 뭔가 은근히 등골이 으스스하게 만드는 류의 작품을 좋아라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9가지 이야기를 매우 재미있게 읽은 것은 사실이다. 각기 다른 색깔을 드러내는 아홉 작가들의 서로 다른 상상력이 담긴 이 책은, 마치 귀가 아플정도로 시끄럽지만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놀이 같았다. 알록달록하고 새콤달콤고소한 각종 과자들이 잔뜩 담겨있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매력을 지닌 문학상 작품집, 앞으로 뭔가 다양한 매력이 담긴 소설들을 읽고 싶을 때마다 이런 '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을 부지런히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최종심에 오른 10편의 작품 중 이 책에는 9편의 작품만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리지 않은 김인숙 작가의 '숨-악몽'은 어떤 이야기일까 몹시 궁금하다. 심사 경위를 읽으니 후보작 10편 중 토론을 통해 먼저 다섯 편을 걸러냈다고 했는데, 어떤 작품들이 과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을까 또 궁금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편이 남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 두 편은 뭐였을까 궁금해진다. 수상작 단 한 편이 정해지지 않은 이번 2008 황순원문학상 후보작들, 읽으면서 독자 나름의 '2008 황순원문학상'을 선정해보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노란지붕(real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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