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월러스 글-그림,
동아시아, 2007, 9000원
다니엘 월러스는 몰라도 영화 〈빅피쉬〉는 알겠지, 〈빅피쉬〉는 몰라도 팀 버튼 감독은 알겠지, 이도 저도 몰라도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라는 책 이름 한 번은 들어봤겠지. 각종 일간지의 신간 소개에 빠지지 않고 소개된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 글만큼이나 의뭉스러운 그림까지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다니엘 월러스라는 이의 재주도 궁금하고, 아버지의 허풍을 구름 위를 걷는 듯했던 동화 속 환상으로 그려낸 어이없으면서도 마음 따듯했던 〈빅피쉬〉도 인상적으로 보았으니 다니엘 월러스를 직접 만나볼 때도 되었다 생각이 들었다. 칭찬 일색인 신문 서평에 호기심이 인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했던가. 신문 서평에서 소개되었던 에피소드의 전후말미를 알아가는 재미에 읽을 땐 좋았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보니 헛헛하다. 아, 그래! 바삭하고 달콤하고 따뜻해서 신나게 먹지만 기실 먹다보면 속이 텅 비어 입맛만 다시고 마는 공갈빵 같다고나 할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유가 아쉬웠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까진 한참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만이 가진 ‘그 무엇’은 무엇일까?
책을 다시 훑어보자 글자 사이로 다니엘 월러스만의 풍자와 해학이 보이기 시작했다. 덜 떨어져 보이는 삽화는 독자를 향한 그의 장난스런 손짓이었다. 애초에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와 다니엘 월러스의 글을 비교하는 것이 잘못이었다. 분석하지 말고 느낄 것!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다.
32와 1/2명의 부족민을 이끄는 ‘위대한’ 족장 로젠펠트. 아버지 로젠펠트 2세가 벼랑에 떨어져 죽은 까닭에 새로운 족장 로젠펠트 3세는 누구도 벼랑 근처에 가는 것을 금지하고 산중턱에 새로이 둥지를 튼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밤에 잠이 들기만 하면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일쑤였는데, 이를 해결해달라는 민원에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잠들기 전 몸에 밧줄을 묶으라는 것이다. 족장이 이러니 부족민들이라고 무어 다를까. 무서운 윌슨족이 쳐들어온다고 하자 나무로 변장하면 알아보지 못할 것이란다. 전나무가 어울린다, 소나무가 어울린다, 나는 낙엽송이 되고 싶다 하며 ‘회의’를 하는 이들은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 이래저래 밖으로는 윌슨족의 침입에, 안으로는 큰사람 애킨스의 역모로 위기에 빠진 로젠펠트 3세는 어떻게 위기를 모면할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의 위대한 힘은 로젠펠트만이 아니라 32와 1/2명까지 밝은 미래로 인도한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나’ 애시버튼 모비스의 숯 달린 펜을 빌어 다니엘 월러스는 한 부족의 ‘위대한 이야기’를 역설과 익살로 버무려 놓았다. 그 위대함이란 순수라는 로젠펠트 3세와 사랑이라는 샐리다.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인가! 그런데 이런 위대한 이야기도 ‘자기와 같은 이야기꾼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걸?’ 하면 윙크를 찡긋하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사실 애시버튼 모비스였으니 말이다.
그래, 공갈빵이 맞다. 배부른 포만감은 얻을 수 없지만 입이 심심하면 생각나는 공갈빵.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는 우리 삶에 작은 여유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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