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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리야, 한판 걸지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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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바리데기 
지은이 : 황석영 지음
출판사 : 창비(창작과비평사) 펴냄


올해 화제가 되었던 소설을 꼽으라면 단연 김훈의 《남한산성》과 황석영의 《바리데기》라고 할 수 있다. 문학계의 관심도 그렇고 판매 순위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두 소설 모두 지금까지의 우리 소설과는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거대담론이나 자기 고백적 형식을 벗어나 역사 혹은 세계사의 한가운데에서 미시적 관점으로 현재를 고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이 소재의 특성으로 시공간적인 제약을 받고 있다면 《바리데기》는 이보다 확장된 세계사적 흐름 속에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 소설이 더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문학적인 면에서 본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김훈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바리데기》 역시 뛰어난 작품이긴 하나 그보단 소설 형식에 더 주목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 청진에서 딸만 일곱인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바리. 때문에 태어나서 100일이 지나도록 이름도 갖지 못했다. 그런 이에게 할머니는 신화 속 ‘바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 때문인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할머니를 닮아서인지, 바리는 어려서부터 신통한 능력을 보이고, 이로 인해 바리는 바리공주 신화를 몸소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 바리가 ‘생명의 약수’를 얻기 위해 겪는 고난이 심상치가 않다. 소련의 붕괴, 가뭄으로 인한 북한의 식량난, 탈북, 밀항, 불법이민자,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등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 사고들의 한가운데에 있다. 운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 가족의 죽음과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 같은 개인적인 슬픔에, 타고난 영매 능력으로 타인의 고통까지 더해진다.


이렇게 간추리고 보니 머리 아프고 설교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지노귀굿 장면은 예외이지만. 이 소설의 흠이라면 바로 두루 뭉실 결론 내어버리는 이 부분이랄까.- 이 소설이 판매 순위 상위권에 있는 이유일 것이다. 바리의 어린시절은 구수하고, 그녀가 사람들과 만들어내는 따듯한 관계는 풋풋하다. 적당히 고무줄을 당겼다 놓는 것처럼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속도감 있게, 흥미롭게 읽힌다.


신화를 소재로 한 장편 서사시를 읽는 듯했다.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소설에서도 배어나온다. 《바리데기》가 서사무가 바리공주/바리데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일 것이다. 거침없이 쉼 없이 내뱉듯 하면서도 거칠지도 모나지도 않으니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입 안의 혀처럼 굴러가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할머니와 바리의 대화가 판소리를 벌인 것 마냥 오며가며 주고받으니 가락이 느껴진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황석영의 이번 작품을 두고 그가 끊임없이 추구해 온 새로운 소설 형식-시적 소설이 여기서 완성되었다고들 한다.


〈바리데기〉라는 창작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바리의 어린시절인 1막, 가족을 잃고 영국으로 오기까지 2막, 영국에서의 생활 3막, 아이를 잃고 지노귀굿을 하는 4막. 작가가 인위적으로 나눈 것도 아닌데 책을 읽는 동안 커튼이 그렇게 닫혔다 열렸다 하며 새로운 막의 시작을 알렸다. 책을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글자가 영상으로 승화된다면 이것이 바로 작가가 마지막에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닐까. 황석영은 분명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