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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

전아리 지음
포럼 2009.07.30
펑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재미없게 다니던 시시한 직장에서 짤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난다. 물론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실 그 자리에 꼭 그 여자가 아니라 다른 여자가 있었어도 삶은 그다지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지금 그는 너무도 허전하다. 어쩌면 진실로 아내를 사랑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네를 헤매던 그는 토끼 분장옷을 발견한다. 입어보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하다. 그는 그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기가 토끼라는 생각을 한다.  너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들어낸다. 그동안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고 적은 돈을 벌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한다. 사회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거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존재감이 없던 시절보다 토끼로 살아갈 때 더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회 안으로 그를 이끈다. 포르노 야설 작가 오세리, 미혼모가 되기로 결정한 정은, 소심한 일러스트레이터 북극곰과 생오이만 먹는 걸로 먹고 사는 오이할아방등 독특하지만 소외된 캐릭터들과의 애정어린 관계와 그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어쩌면 작가가 진정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은 아닐까?

 가볍게 읽을 만하지만 오래도록 여러가지로 생각을 갖게 하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연배에 비해서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까 싶었다. 나이를 많이 먹어도 사람 구실 못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린 나이에 이토록 세상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어른이라고 해서 내세울 것도 없는 가보다

 구양수는 글을 잘 쓰는 비결로 다독, 다작, 다상량을 들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어째서 쓰는 것이 생각하는 것보다 앞서는가 말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그 다음에 많이 써 보아야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알고보니 원래 구양수가 제시한 것은 다문(多聞), 다독(多督), 다상량(多想量)이었다. 많이 듣고 읽고 생각하는 것이 글을 잘쓰는 비결임이 더 옳은 것 같다.

 이 소설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의 작가 전아리씨를 생각하면 '소년등과'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큰 상을 받고 등단한 그야말로 '소년등과'의 증거가 아닌가. 그의 수상 경력은 이미 고교 재학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문학 영재라는 말을 들으며 저작 활동을 해 왔고 그 덕분에 대학도 남들보다는 쉽게 진학한 편이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이 오로지 수능하나를 목표로 하고 3년간 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그의 인생은 어쩌면 더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그 덕에 유명해지고 남들보다 더 쉽게 간다고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겪어봤듯이 글을 쓰는 작업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천형(天刑)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무언가를 쓰고 싶은 가슴 속의 울렁임을 참지 못해서 글을 쓰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글 쓰는 사람은 늘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들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 또한 글 쓰는 것일 것이다. 괴롭지만 가야하는 길 말이다. 아마 전아리 작가 역시도 그럴 것이다. 그의 성취가 몹시도 빛나지만 그 뒤의 숨은 노력을 우리는 간과한다. 그 숨은 노력의 대부분이 아마도 다문(多聞), 다독(多督),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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