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로 말해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에겐 수화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농인이나 청인이라는 말도 몰랐다. 난 농인은 말을 못하는 사람, 청인은 들리지 않는 사람인 줄 알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처음 몇 페이지는 이해가 잘 안되기도 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농인'은 들리지 않는 사람, '청인'은 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이렇게 황당할 수가...나의 무식함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농인인 아내와 청인인 남편이 부부로 살아가며 겪게 되는 잔잔한 일들을 말하고 있다. 처음엔 두 사람이 같이 사는게 과연 가능할까. 청인인 남편이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나의 결혼 생활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에 놀랐다.
부부로 살아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30년 정도 살다 만나 서로 적응하고 이해하며 살아간다는 건 많은 노력과 사랑이 필요한 일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느껴 답답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이 책 속의 부인(고양이)와 남편(거북이)가 살아가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성격이 급한 내가 느린 신랑때문에 속이 터지는 일이 여러차례 있는데, 고양이 부인도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거북이 신랑때문에 답답해하는 모습이 나와 겹쳐져 웃음이 났다. 또 이사를 하며 문을 살살 닫고 행동을 조심하라고 주인을 주는 청인 남편에게 자신은 안들리는데 어떻게 조심하냐며 화를 내는 농인 아내를 이해하고 다독이는 남편의 모습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부부의 일상만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본에서 농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부당한지를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때도 통역자가 없어 필기를 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야만 하고,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제한적이라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못할 때가 많고, 수화가 아니라 구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건 물론 답답하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난 대학에서 수업을 받으며 수화 통역자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왜 나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볼 생각을 못했을까. 세계 각지에 농인들이 있으니 우리나라에도 농인들이 있을텐데 왜 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한건지...가끔 지하철에서 수화하는 사람들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것 같아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 책에서는 수화가 단지 하나의 언어일 뿐이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만나면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것처럼 농인과 청인도 마찬가지라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농인이 무조건 청인의 편의를 생각해 구화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가 농인을 어딘가 부족하고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농인의 세계에선 청인이 그런 존재라고.
처음에 내가 가졌던 편견과 농인을 바라보던 안타까운 시선이 책을 다 읽었을땐 조금 바뀌어져 있었다. 물론 그들이 안스럽긴 하다. 대화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듣지 못한다는 건 많이 불편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단지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할 뿐이라는 걸 이젠 알았다. 이젠 더이상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보진 않을 것이다.
나의 조그만 변화가 이 사회에 큰 변화를 만들어내진 못하겠지만 한 명 한 명 생각이 바뀌면 사회도 언젠간 바뀌지 않을까.
이 책이 출간될 때까지 거북이 남편의 부모님이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고 했는데 그 분들도 이 책을 읽고 며느리를 인정하고 며느리의 언어를 배우려 노력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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