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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억의 빈자리

기억의 빈자리(낮은산 키큰나무8)

사라 윅스 지음 | 김선영 옮김
낮은산 2009.09.25
펑점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권위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어떤 사건 앞에 내 잘못은 없고 네 잘못만 있다고 한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상대방이 나보다 약할 경우 더 빈번하다. 강한 남편과 약한 아내, 권위적인 교사와 자존감이 낮은 학생, 훈육을 좋아하는 부모와 자신을 실수투성이로 그리는 아이의 경우가 그렇다. 강한자의 잘못 떠넘기기는 자연학습되어 떠넘기기도 전에 약한자는 스스로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자책하며 자신을 괴롭힌다.

아이들의 경우, 어떠한 불행이 닥쳤을 때 그들은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아직은 혼자서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유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갖는 자책이다. 어른앞에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늘 약자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처음으로 세상에서 맺는 관계는 양육자와의 관계다. 아기는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욕구에 대처하는 양육자의 반응을 통해 관계를 학습한다. 그리고 차츰 양육자가 자신이 바라는 욕구에 제대로 반응을 해주지 않거나, 어느날 갑자기 자신을 돌보아 줄 양육자가 사라져 버렸을 때 아기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불행에 대한 아이의 자책은 아기가 어느정도 자라 아동기에 들어서도 한동안은 지속된다. 한밤중 부모의 싸움이라던가, 이혼이라던가, 혹은 죽음으로 부모를 잃게 되는 경우까지도 아이들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 그것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자라지 못한 내면아이가 있어 자신에겐 불행할 타당한 이유라도 있는듯이 모든것은 자신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믿기도 한다.

11살의 소년 제이미 역시 자신의 불행은 모두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잘못 선택했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 말했기 때문에, 자신이 행동을 잘못했기 때문에....

반면에 자신보다 약한것을 짓밟기 좋아하는 권위적인 성격의 래리와 밀러 선생은 달팽이처럼 자꾸만 안으로 말아들어가는 슬프도록 약한 상태의 제이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제이미는 관계속에서 다시 상처받을 수 밖에 없다.

제이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였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항상 제이미를 배신했다. 고양이 '미스터'가 그랬고, 아빠가 그랬고, 그레이 영감이 그랬고, 기억을 잃은 이모가 그랬다.

이쯤이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말하는 이유 또한 관계 속에 있다. 관계의 동물 인간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치료하기도 한다. 상처받고 두려움으로 관계를 기피하는 제이미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는 관계 또한 존재했다. 일일교사 스톤씨, 괴상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오드리, 그리고 기억을 잃은 이모......

그들은 닫힌 제이미를 바라보았다. 제이미를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애정을 갖고 바라보았다. 애정을 갖고 본다는 것은 그의 피상적인 모습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제이미의 숨겨진 아픈마음과 비밀스러운 상처를 본 것이다.  제이미를 온전히 지켜봐주고, 들어주며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제이미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성장소설인 11살 제이미의 이야기 <기억의 빈자리>는 나에게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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