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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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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하고 우연한 것이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지금 가슴이 너무 뜨거워져서 세상의 모든 열기가 온 몸을 휘감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감동의 수준을 넘어 그저 뜨겁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마음을, 그리고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자극시킨 감동적인 문구들에 대한 간단한 느낌을 적어보고자 한다.

1) 마음의 아기는 시간의 법칙을 벗어나 자란다.

마음의 아가... 독특한 발상, 색다른 표현이 감성을 자극 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2) 솔직하시니까 참 좋네요.

윤수가 유정의 지나친 솔직함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유정의 솔직함은 차가웠다. 어쩌면 그녀는 여태껏 자신의 뜨거움을 가식이라고 생각해 왔고, 차가움으로 자기자신을 완전무장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가식을 증오하고 지나친 솔직함으로 인생을 살아온 젊은 날의 추억이 있어 유정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는다.

3) 배반에 익숙하다고 해서 배반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듯이...

상처를 받는 행위에 익숙해지면, 상처를 계속 입어도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익숙해진다고 아픔의 정도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내가 상처에 익숙해지려고 했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뭉클했다.

4) 세상은 행위만을 판단하니까요. 우리가 혹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거...

유정과 윤수는 진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장을 대충 읽어 넘기지 못하고, 두어 번 더 읽어보면서 뜻을 좀더 자세히 음미해 보았다. 유정은 살인과 상장은 간발의 차이로 뒤바뀔 수 있다는 예를 들면서 위와 같이 말한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유정은 윤수를 동정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실이 그랬다. 그녀는 오히려 대담한 어조, 그리고 세상이 쓴 안경에 대한 명백한 비판으로 자신 역시 별다를 것 없는, 오히려 더 더욱 못난 자신을 앞세워 윤수가 굶주려 왔던 사람의 향기를 전해 주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나로 하여금 문유정에게 매료 당할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5) 내가 사형수라서 남들에게 좋은 것도 줄 수 있는 거구나... 평생 남한테 좋은 일 한번 못해 봤는데 사형수가 되어서 이제야 좋은 일을 하는구나... 이거 진짜 이야기 맞나요...?

교도소에서 사형이 확정된 최고수 앞에서 감히 불행을 거론하는 대신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윤수가 유정에게 고백한 말이다.
정말 한 치의 이기심도 없는 사람 입에서나 나올 법한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찢어지고, 아픈 상처로 가득한 윤수에게 필요했던 건 정말 아주 작은 것들이었겠구나 싶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느낌을 갖는 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6) 바보 같은 소리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었나요, 묻고 싶기도 했다.

유정과 윤수는 상호작용을 하며 조금씩 치유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7) 사람하고 사람이 존댓말로 이야기 하는 거, 처음이었어요.

눈시울이 정말 뜨겁게 달아 올랐다.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닌 윤수가 마치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려 눈시울이 뜨거워져 왔다. 난 가끔씩 내 가족이나 친구가 고통 당하고 있을 때, 나의 마음도 똑 같이 고통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난 윤수의 마음 속 상처를 보고 어느덧 그와 아픔을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8) 분명 그들이 우리들의 만남 뒤에 견고하게 진을 치고 있었지만 우리는 애써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 하는 그들이란 윤수와 유정이 갖고 있는 아픔의 공통점들이다. 꼴통이란 공통점으로 유정, 이 주임, 윤수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음 짓는다. 웃는 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그만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9) 내가 얼마나 목요일을 기다리는 줄 알아요? 이 세상에 목요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윤수와 유정의 만남은 매주 목요일... 윤수의 해맑은 고백이 마음을 잔잔하게 여울지게 한다. 목요일이 아니라 매밀매일이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마음이 잠시 쓰려왔다.

10) 나는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과 서늘한 여름 실내가 언제나 미안했다.

유정은 부잣집 아가씨이다. 유정은 자신의 행위는 모두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수를 만나기 전까지...  시원한 바람, 따뜻한 햇살, 서늘한 실내가 이젠 미안해졌다는 건 유정이 윤수를 통해 마음의 상처가 점점 치유돼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11) 똑 같은 초록이라도 봄나무하고 여름나무하고 가을나무 소리가 다 달라요.

바람에 스치는 나무소리가 다 다름을 구별할 만큼 그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 것 같다. 우리도 바람 소리로 계절을 구별할 만큼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맑아질 수 있을까...?

12) 사랑은 관심이다.

유정의 친 오빠는 그녀의 아픈 상처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나서 "그 떈 잘 몰랐다."고만 짧게 말했다. "사랑은 관심이다."라는 유정의 독백은 '무관심은 곧 사랑의 종말이다.라는 상대적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13) 사람들은 단풍구경을 간다고 하는 기사가 있었어요. 문득 단풍은 죽음인데 사실 나무로서는 죽음인데 사람들은 그걸 아름답다고 구경하러 가는구나 싶었어요... 저도 생각했죠. 이왕 죽을 바엔 단풍처럼 아름답게 죽자고.

나뭇잎의 아름다운 죽음을 본 받고 싶단다. 윤수는...

14) 처음으로 살고 싶었어요

윤수의 일생을 블루노트로 조심스럽게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책을 읽던 도중에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마지못해 살아 온 끝에 결국은 윤수에게 작은 희망의 빛이 돼 준 유정이 고마웠다.

15) 꾸밈없는 말투, 바보였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였고, 흉계와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도 바로 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정은 생각이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정 역시 셋째 올캐의 생각을 읽지 못햇던 것이다. 여태까지 나의 선입관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했던 것은 모조리 나의 흉계고 음모라는 생각을 해본다.

16) 나는 시계의 배터리를 빼버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은 윤수의 최후의 날이 마침내 다가왔다. 오 하나님...! 겨우 살아난 희망이라는 불씨 하나가 꺼져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유정의 심정은 그야말로 지옥불 같을 것이리라. 시계 초침 소리 하나하나가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을까?

17) 너는 뜨거운 사람이야. 뜨거운 사람은 더 많이 아프다.

뜨거운 사람은 더 많이 아프다. 유정이 그랬듯이. 뜨거운 사람은 그만큼 더 아플 각오를 해야한다. 뜨거운 만큼 아플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

18)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

고모는 스스로 그 욕망을 버리고, 그 모든 엄마를 잃은 가엾은 사람들의 엄마가 됐었다. 이제는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나의 어머니...

나는 모니카 수녀가 누구보다도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입견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니카 수녀의 용기있는, 그리고 후회없는 선택이 문득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할렐루야!

18) 작가라는 직업이 이토록 뼈저린 고독을 수반하는 것이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공지영 작가의 치열한 작가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진정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自問과 동시에 새로운 삶에 대한 큰 도전의식을 소설의 감동과 더불어 보너스로 얻게 되어 기뻤다.

"당신으로 인해 진정 귀중하고도 따뜻하고...행복한 시간을 가졌었다고.
혹여 허락하신다면 말하고 싶다고...
당신의 상처받은 영혼이 내 목숨을 다해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살아서 마지막으로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내 입으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사랑했다고 말입니다."
                            

-블루노트 18, 정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