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나쁘다-옳다 혹은 그르다라는 분류는 적절치 않은, 그러나 반짝반짝하는 전구빛같은 감정들이 있다.
어디선가 봤다거나 아니면 진짜로 느껴보거나 그러나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았던,그런 미묘하고 섬세한, 그러면서도 섬찟해지는 감정말이다.
물론 그 감정 앞에는 사랑안에서라는 말이 조건부로 붙어야한다.
내 머릿속으로 옮겨 놓아야할 것 같은 그 감정들이 군데군데 툭,툭, 튀어나와 연애소설을 통한 대리만족의 경험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야마다 에이미라는 작가의 약력(?)이 화려하다. 대학 문학부를 그만두고 갑자기 호스티스, 스트립걸 등..흥미롭다 못해 자극적인 이색 직업들과 흑인병사와의 세간의 화재가 된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는작가의 인생이 글에 녹록치 않게 녹아있는 듯 하여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첫 장을 넘기며 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손가락질 하면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싶은 반발심 같은 것...마치 세상의 시선이나 사람들은 신경쓰고 싶지 않아, 라는 톤 앤 매너가 작품 전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따라서 이야기는 아주 작아지고 주인공들의 심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좁지만 집요하리만큼 깊어진다.
6개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스토리상의 엔드는 없지만 이상하게 감정이 완성되어져 있다.각각을 읽고 나면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앞으로가 뚜렷하게 그려질 것만 같은또는 제대로 읽었다면 의무적으로 해야할 것 같은 압박을 가해온다.
참...신기하다. 완성되지 않는 단편은 많이 보았지만 이리도 후유증을 주는 책은 처음이다.
여섯 커플이 보여주는 달콤 쌉싸래한 여섯 색깔 사랑의 풍미, 그 첫번째 이야기는 '간식'이다.
연상의 여인 가요와 동거하는 공사판 노동자 유타와 그의 구석구석을 사랑하는 스무살 여대생 하나뻔한 삼각관계 속에서 간식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도출해낸다.
가요는 유타라는 남자를 헌신과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자신감 넘치는 여유에서 비롯된 집착으로꽁꽁 묶어 놓고 있다.
주식, 밥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늘 우리는 별식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밥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자신이 주식이란 것을 알기에 공포사슬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를 수 있는 그녀.유타의 어린 연인은 임신을 하고 낳겠다고 억지를 쓰는 하나를 유타는 버린다.
"간식이란 건 말이야, 강요를 당하게 되면 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거든." (35쪽)
왜 나왔을까, 했던 유타의 공사판 동료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다.
작가의 노련한 인물 배치나 대사가 어색하지 않게, 미소 지어지게 녹아있는 작품이다.
두번째 이야기 "저녁식사"에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식사를 만드는 것밖에 없는 유부녀 미미가 나온다.
시집에서의 천대를 견디지 못하고 쓰레기 청소부와 사랑에 빠져 그의 집에 살림을 차렸다.
늘 힘들게 일하는 그의 건강을 염려하느라 요리를 만들면서도 주절주절하고 있는 그녀를 상상하니 안쓰럽고 처절하기까지하다. 과정은 좀 짜증스러웠지만 매듭은 아주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다.
그녀는 자신을 끝까지 무시하며 돌아와도 용서해주지 않겠다는 남편을 가여운 사람으로 취급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무서울 게 없고, 부러울 것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
누군가에겐 재털이였던 여자가 누군가에겐 화병같이 되고 싶다는 욕심...
요리는 성욕 이상으로 사랑의 증거라고 믿는 그녀가 남자의 전부가 되고픈 갈증의 연속.그것들이 짧지만 독특한 방식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다.
세번째 이야기 "풍미절가"는 슈커 앤 스파이스라는 제목에 걸맞는 작품이다.여자의 싫어, 좋아를 헷갈려하는 숙맥인 어린 손자가 설레이며 사랑을 키운 여자친구에게 채인날, 달게 녹는 것은 여자애만이 아니라며 캐러멜을 쥐어 주는 개방적인 할머니,그녀의 대사가 작품을 대변한다.
"마셔보고 입에 안 맞으면 안사지, 입어보고 사이즈가 맞아도 안사고....
그런데도 모르고 사버린 경우는 영수증을 갖고 반품하러 갈 수도 있지. 넌 반품을 당한거야." (124쪽)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서 마음을 몇 번이나 문지르며 읽었던 이야기, 네번째 "바다정원"이다.
이혼한 엄마의 어릴적 친구, 이삿짐 센터 일을 하는 사쿠나미를 사랑하게 된 요시다가 주인공.
엄밀히 말하면 아저씨지만-답지않게 귀엽고 섬세한 그에게 반말을 찍찍 갈겨가며 이름을 부르는 요시다는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도 모르고 틱틱대거나 울렁대며 여자가 되어간다.
오랜 추억을 정원에 간직하고 친구 사이로 지내는 엄마와 사쿠나미를 보며, 심술을 내는 요시다는 그를 바다로 데려간다. 바다에서 그와 시간을 보내는 요시다, 사쿠나미를 아저씨라고 부른 친구 때문에 첫사랑에 대한 서러움에 자신도 모르게 울어버리고, 그 날의 추억으로 둘만의 바다정원을 만든다.
좀 어려웠던 여번째 "아틀리에"는 일인칭으로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평범하지 않은,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어린 여자와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다. 다시 더러워질 배수구를 청소하는 일을 하는 유지는 아사코와의 공간을 끔찍하게 사랑한다. 그곳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나누며, 자신만의 어린새가 되어버리는 아사코가 자신으로 꽉 차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의 행복이다.늘 불안하며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이 어두운 아사코는 시부모의 마음에는 차지 않지만그녀를 책임지는 것이 사랑이 되어버린 유지는...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사코를어른스럽게 감싸주는 것마저도 어느새 사랑이 되어 버렸다.
마지막 "춘면"은 짝사랑했던 대학동기를 아버지에게 빼앗긴 황당한 쇼조의 이야기다.
어머니와 사별한 소각장 인부인 아버지를 사랑한다며 결혼까지 감행한 야요이는자식들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소각장 일을 누구보다 이해해주며 소통하고 있다.
짝사랑이 새어머니가 되어버린 사태에 울화통을 감추고 있는 쇼조는 둘의 닭살행각에 그만 폭발하며 못난 모습을 보이고, 야요이에게 선천적인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어릴적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거짓된 글짓기가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있던 쇼조는 늘 정형화된 모습으로 갇혀있던 아버지가 아픈 야요이와 일상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짐을 슬며시 내려놓는다.별 내용도 아닌 것으로 촌스럽게 길어졌지만 나의 가벼운 서평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들을 담아내고 있다.읽은 사람마다 느껴지는 차이가 너무 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주인공의 일방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는 것이 특징이지만 가벼운 주변인물들의 터치가 묵직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내공이 대단하고 놀라웠다.
육체노동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홍보 문구에서 예측가능한 육체적묘사나 성애적표현은 기대와는 달리 극도로 자제되어있다. ^^
어찌보면 사랑의 육체적 맛에 대한 것이기 보단 육체적 노동자를 각기 다른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시각적인 맛에 중심을 두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런데 그 맛이 감각적이다, 를 넘어서서 아주 신선하고 독특하며 고정관념을 깨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사랑안에서 육체와 정신의 완벽한 결합은 고유의 맛을 내고, 그 맛에는 책임질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삐리리(tazzo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