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웨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될까? 저자 닐 게이먼의 책 속 인터뷰에는 영향받은 환타지 소설은 없다고 했지만 제목에서부터 《피터팬》이, 문을 통해 이동한다는 것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이들의 계속되는 이상한 여행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떠오를 뿐 ‘이러이러한 데서 영향을 받았잖아!’라고 들이밀 만한 정도는 아니다. 닐 게이먼의 소설이 훨씬 후대에 쓰여졌다는게 약점이라고 해 두자. 사실 괜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네버웨어》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삽화 역시 훌륭하게 어울린다고 칭찬했다.
자신의 TV드라마를 소설화한 《네버웨어》는 위에서 말했듯이 런던의 지하세계를 그리고 있다. 보기엔 런던과 같지만 과거의 런던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여기엔 아직 런던의 스모그가 존재하고 런던 대화재의 흔적이 남아있는 등 런던의 19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런던의 지하세계란 공간의 틈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틈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 없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런던의 지하세계는 무척 재미있다. 런던의 실제 지하철 역명인 얼스코트(백작의 궁정이라는 뜻)에는 백작이, 블랙프라이어스(검은 옷을 입은 도미니크회 수도사라는 뜻)에는 수도사가, 앤젤역에는 이슬링턴이라는 천사가 살고 있다. 등장인물인 도어(door), 카라바스, 헌터 모두 이름 그대로의 역할과 성격을 띠고 있다. 런던 역사도 런던 지하세계의 중요한 축이 된다. 아마도 작가의 말장난은 곳곳에 숨겨 있을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이런 재미를 직접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간혹 아쉽다.
“그는 머릿속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면서 그는 마지막 문장에 밑줄을 세 번이나 긋고 빨간색 잉크로 그 문장을 다시 커다랗게 적었다. 그리고 그 문장에다 동그라미를 치고 문장 옆의 빈 공간에 수도 없이 느낌표를 찍었다.”
닐 게이먼은 런던의 문화와 역사를 비틀고, 말장난뿐 아니라 ‘글’을 가지고도 감히 장난을 친다. 발칙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소설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풍자소설이라 불러도 되겠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 소설 줄거리를 적지 않겠다. 적으려 하니 끝도 없고, 맛보기만 보여주려니 아쉽다. 대단한 결말은 아니다만 알고 읽으면 재미가 덜하기에(내가 그랬다.) 까닥하단 스포일러가 될까봐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런던의 증권맨 리처드 메이휴가 길에 쓰러져 있던 소녀를 구해주고 난 뒤 자기도 모르게 지상의 틈에 떨어져 지하세계를 여행하게 된다고만 해두자. 뭐, 사실 그게 내용의 전부이기도 하니까.
지금 심심하다면, 《네버웨어》, 적극 추천이다.
닐 게이먼, 나중길 옮김, 노블마인, 2007년,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