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애송명시
한국시인협회
문학세계사
올해로 한국 현대시가 100년을 맞았다고 한다. 기념 세미나에서 낭송되었던 시집에 일러스트를 삽입하여 다시 태어난 <시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애송명시>를 볼 수 있었다. 저마다 자신이 유독 좋아하는 시가 한 편 쯤은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시나 시 구절을 외우고 있기도 하고, 따로 적어 지니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도 물론 흥미롭긴 하지만, 과연 시를 직접 쓰는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시에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괴로운 시대적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아름다운 이상향을 그려냄으로써 지금의 순간을 잊고자 하기도 한다.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하고, 생각나는 사람이 다른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 갈 수 없는 곳도 시 속에서는 얼마든지 갈 수 있으며,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시를 통해서라면 얼마든지 만나볼 수 있다. 시인의 마음이 아름다운 시어를 통해 시 속에 그대로 스며든다. 그리고 이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시 속에 동화되어 그대로 녹아든다.
이 책에는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들이 50편이 조금 넘게 수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은 시가 주는 매력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서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은 풍경이 떠올랐고 좀 더 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라고 해서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시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같은 시들이 그것인데,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주위에서 보통 많이 암송되고 있는 시들이라서 생소하다거나 시집 자체가 어렵기만 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좀 새로운 시들이 있기를 바랐던 마음 때문인지, 식상하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면 그랬을 수는 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시인들이 실시한 설문조사였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김춘수의 ‘꽃’으로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윤동주의 ‘서시’가 잇고 있었다.
그 외에도 기형도의 ‘빈집’, 김수영의 ‘풀’,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노천명의 ‘사슴’, 박두진의 ‘해’, 서정주의 ‘자화상’, 이용악의 ‘오랑캐꽃’, 이육사의 ‘광야’, 이형기의 ‘낙화’, 천상병의 ‘귀천’,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이 있었다.
시인들이 꼽은 애송명시라고 해서 보통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들과는 많이 다를 거라 생각했었는데, 시인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구나, 우리와 비슷한 교감을 나누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시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였다.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더불어 아름다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소소하면서도 작은 것에 기뻐할 수 있는 행복함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하에스(hazyoun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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