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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차폰 잔폰 짬뽕

차폰 잔폰 짬뽕(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주영하 지음
사계절 2009.10.15
펑점

의식주 중에서 의와 주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바로 "식", 즉 먹는 것이 아닐까 한다. 먹을 것을 먹지 못하면 죽기도 하고 맛있는 먹거리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음식이라는 것에는 생명 보존과 미각의 즐거움 이외에 '음식 문화'라 부를 수 있는 특징이 존재한다. 문화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집단적인 거주를 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가 바로 음식의 교류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짬뽕'이라는 말의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짬뽕'이라는 말의 의미는 여러가지가 한번에 뒤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도 잔폰이라고 불리우는 육해공의 재료가 모두 들어있는 음식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일본어의 속어로 잔폰이란 말은 뒤섞이거나 번갈아 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어에도 '짠폰'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뜻은 마구 뒤섞어 놓은 혼잡 상태를 가리키며 베트남어에도 이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똑같다고 한다. 하지만 말레이나 베트남에는 음식은 없고 말만 존재한다. 이렇게 단적인 예만 보더라도 동아시아의 음식 문화는 그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역사 만들기와 전통의 창조에도 바로 이 음식이 이용당했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두부와 비빔밥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진화를 거듭한 음식 문화에 대해 알려준다. 즉 음식의 기원과 유래를 조작하는 행위는 음식을 가지고 민족의 정통성을 담보하려고 하는 노력이며 국가나 민족 사이에서 특정 음식의 기득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요즘 TV에서는 맛집이니 맛기행이니 하면서 전국의 온갖 식당들을 다 돌아다니며 촬영하는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TV를 통해서 볼 때는 정말 먹음직스럽고 건강한 음식처럼 보이는 식당들이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게 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이 역시 좁은 의미로 보자면 대중매체를 내세워 입맛을 강요 당하고 제어 당하는 결과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소수민족들의 음식 주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특히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중국의 급변하는 민족 식별 정책에 따라 분류되고 통합되기를 거듭하면서 그들의 전통 음식을 비롯한 문화가 중심으로 통합되기에 이른다. 즉 소수민족의 음식이나 음악 등은 관광자원으로 변모하여 상점이나 박물관 등에서만 실존을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제주도만 보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제주도에서 향토 음식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육지 음식이 되려 제주도에 상륙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진짜 제주도의 향토 음식은 우리에게는 그 이름조차도 낯선 음식들이 많다. 즉 주변부 음식 문화의 운명이 그대로 제주도에도 적용되어 버린 것이다. 그보다 더한 것은 바로 음식의 식민지화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어느 한 곳이 특정 식물만 재배하는 땅으로 변모해 버리고 기존에 그 곳에서 자라던 식물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바로 일본의 아마미 군도가 그런 곳인데, 일본에 의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바뀐 이후 사탕수수로만 온 논밭을 채우게 되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인해 지역 농업 시스템은 일찌감치 붕괴되었으며 지금은 4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농업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미래의 음식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로컬푸드 시스템의 복원이라고 말한다. 즉 소규모의 지역권역에서 주민들 스스로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는 체제를 말하는데, 한 개인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로컬푸드 시스템을 구축한 지역사회끼리 필요한 부분을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자급자족이라는 말이 원시적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너무 이상적인 발상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조작되고 왜곡된 음식 문화로 인한 먹거리가 아니라 정말 건강에 유익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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