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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천사같은 돈 악마같은 돈


 

천사같은 돈 악마같은 돈

사이바라 리에코 지음 | 편집부 옮김
현문미디어 2009.07.30
펑점

제목이 말해주듯 돈이란 선악의 두가지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천사같은 돈일테요, 누군가에게 고통의 씨앗이 되었다면 악마같은 돈일테니까 말이다.  또한 이 선악의 결정은 순전히 개인적 신념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사이바라 리에코는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란다. 단순히 만화가라는 직업만 감안한다면 돈에 대해 무슨 확고한 주관이 있을꺼라는 짐작이 어려울진데, 그녀는 참으로 질곡 많은 삶을 살아왔고, 그 삶속에서 돈의 결정력이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이해한다면 그녀의 돈에 대한 신념이 그리 의아스럽지는 않을것 같다. 
우선 그녀의 친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다. 가난속에서 허덕이던 그녀의 어머니는 젠틀한 새아버지와 재혼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도박중독자였다. 대외 홍보용의 집과 외제차와는 상반되게 집안 사정은 갈수록 나빠졌고, 급기야 아버지는 도박비를 대라며 어머니를 협박하고 구타하기에 이르렀고 끝내 자살하고 만다. 그것도 그녀가 대학 입학 시험을 보러 가는 날에.
그녀는 좌절했다. 비참한 현실속에서도 그녀의 어머니는 돈을 긁어모아 얼마의 돈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어렵사리 미대에 진학한 그녀에게 여전히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타고난 미술적 재능을 갖춘 친구들에 비해 자신의 실력이 보잘것 없다는 것을 인식한 그녀는 본격적으로 돈 벌 궁리에 몰입한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였던가...그녀는 일명 틈새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미술학도들의 높은 콧대로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성인 잡지 삽화는 물론 만화까지 게의치 않고 섭렵해 나간 것이다.  처음에는 적은 보수로도 만족했지만 차츰 돈 버는 재미를 알아가기에 이른다. 그러다 마작관련 만화를 그려볼것을 의뢰받은 그녀에게 시련이 시작되었다. 마작에 관한 실전을 배우고자 시작한 도박에 점점 빠져든 것이다. 그녀는 잃고 또 잃었다. 머릿속이 도박에 관한 것으로 가득 채워져 갔을때쯤 다행히 스승으로 삼을만한 이를 만나 건전한 현실로의 복귀를 맞았다. 


그녀는 단언한다. 돈에 관해 대놓고 언급하는 것이 저급하다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녀가 어린시절 살았던 시골 마을은 그야말로 가난하기 이를데 없었다. 가난은 여지없이 되물림 되고, 그 가난 속에서 점점 꿈도 웃음도 잃어갔던 친구, 선배들을 목격했던 그녀에게 가난이란 극복해야할 무언가로 인식되었다. 아버지 복이 없어 매번 가난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녀에게 믿을 것은 돈 밖에 없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과정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으려고 자신의 미술적 재능을 시험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그야말로 눈물겹다. 
현실속에서 돈이란 전지전능한 신과 같다. 손에 잡히는 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좌절을 씻어줄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돈의 선악을 온몸으로 체득하며 살아왔다. 그리하여 돈을 뜨겁게 사랑하는 법을 배운것이다. 이제 그녀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을 부릴줄 아는 여유를 가졌다. 지금 그녀에게 돈이란 과연 천사일까 악마일까?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돈에 대한 나의 안일한 신념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그녀만큼 찢어지는 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오히려 돈의 노예로 전락해가고 있는듯 하다. 돈을 밝히는 이들을 우습게 보지만, 실상 나는 돈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돈이 주는 즐거움만을 동경할 뿐이다. 뜨겁게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차갑게 바라보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어정쩡하고 이중적인 마음인 것이다. 
나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속되어 보일까봐 정신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곧잘 역설하곤 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가치가 주는 즐거움을 온전히 즐길줄 아는것 같지도 않다. 
이제 그녀처럼 돈을 뜨겁게 사랑해볼 생각이다. 가난이 되물림되듯  돈에 대한 부모의 신념도 되물림 될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로 나가 실질적인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그녀가 믿는 돈의 효용이듯, 나 또한 그 효용을 믿고 사랑하도록 노력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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