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을 다시 읽다 05
이효석
중앙books(중앙북스)
학창 시절 문학 시간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국어책 가득 빈 공간을 메우는 깨알 같은 설명들이 나를 어지럽게 했던 것 같다. 하나하나 설명들을 머리에 집어넣고자 노력하였지만, 알 수 없는 낱말들이 서로 조우하지 못했다. 옛 글들이다 보니, 나이 어린 나로서의 최선의 방법은 그저 외우고 또 외우는 것이었다. 문학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되,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것이어야 함을 그 때는 몰랐었던 것이다. 그런 우리를 못마땅해 하는 선생님을 이해하고도 남는 요즘이다.
책읽기에는 때가 있는 경우가 있다. 같은 책이라도 시기에 따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다른 경우가 그 때문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 알게 되는 것도 있고, 아는 것이 늘어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 문학작품을 다시 꺼내 읽게 되면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도 중고등학생들에게 고전이나 시를 읽히게 하는 교과내용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그 때 접했던 작품들이 아직도 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게 하므로. 그래서 이 책도 선택하게 되었다. 옛 시절을 떠올리며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제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읽는 것이 잘 되지 않았다. 그저 읽고 느끼는 바가 주류가 되는 책읽기가 되었다. 다행한 것은 이러한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한 작품이 끝날 때 마다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있다. 그것으로 꼼꼼히 되돌아보기가 가능할 수 있었다.
소설은 한국문학을 다시읽다의 시리즈로써 단편들로 구성되었다. 장편보다는 단편을 실어 더 많은 작품을 알리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5권에서는 이효석, 박화성, 박태원 유진오, 이무영, 강경애님 9인의 작품들이 모아져 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우리민족이 가장 힘들었던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읽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 다만 느낌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나, 문학을 읽는 이유가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는 목적에 있다면 가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다. 단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은 살기 힘들었다는 식은 곤란하다. 당시 민중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느끼는 바를 함께 느끼는 것이야말로 그 시대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되리라 보는 것이다.
작가들의 작품이 다양하게 실려 있기 때문에 식민지 시대의 민중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순수 문학에 몰입한 이효석님의 “메밀 꽃 필 무렵”,“수탉” 등은 은유의 마법을 엿 볼 수 있기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메밀꽃 필 무렵은 다시 읽어도 감동이 덜하지 않다. 꿈처럼 몽롱함을 글로 나타내는 그 솜씨는 역시 대단하다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박태원님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성탄제”는 식민지 하의 지식인의 내적갈등과 여염집에서의 고단함을 사실적이면서도 치밀하게 표현함으로써 당시 민중들의 의식을 잠시 들여다 볼 수 있겠다. 가장 치명적인 느낌은 강경애님의 “지하촌”에서 받게 된다. 불구의 칠성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당시 민중의 삶 그 자체다. 처절하고 먹먹해질만큼 암담한 현실이 삶을 갉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느 장르 소설이 이보다 더 무서울까 할 정도로 말이다.
한 작품 그리고 또 한 작품이 주옥같다. 요즘 소설류의 참을 수없는 가벼움 혹은 직접적인 서술에 싫증 난 이라면 옛 우리 문학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은유의 미덕이 곳곳에 숨어있어 발견하는 이의 기분이 좋아지고, 사색의 순간에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으며 당시 민중의 삶속에서 우리의 살아갈 날들에 대한 모색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책사랑(kongkongi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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