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
저자가 수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현재 IBM 기술담당 이사라는 말에 무척 호기심이 갔다. 나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인물이 대표적인 경제현상인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을 한장 한장 넘겨가면서 책을 읽기가 두려웠다. 그것은 불황기라고 할 수 있는 현재의 경제현상과 인간 군상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비즈니스 현장에서 비인간적인 모습들을 실제 겪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기만 하더라도 경제 불황기에 사람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마음이 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실 이 책의 맨 첫장은 꽤 신기하면서도 희망적이었다. 저자 자신이 사회 생활을 시작할 당시인 1970년대 독일을 묘사하고 있는데, IMF 직후 사회 생활에 첫발을 들여놓았던 나의 상황과 극명하게 대조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 당시에는 임금이 매년 6~7퍼센트씩 상승했고 오랜 파업 뒤에는 10퍼센트가 상승한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윤'이라는 단어는 욕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미래에 대한 투자를 위해 도시마다 대형 대학을 새로 설립했다고 한다. 그러한 대학에서 당시만 해도 현실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은 대기업의 노예나 앞잡이로 과학자의 양심을 배반하는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돈이 안되는 학문은 버려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미래와 일자리, 자녀 교육 등에 대한 걱정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 예전에는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현재는 비관적인 분위기다. 이것이 바로 경제의 호황기와 불황기의 대표적인 모습이라 한다. 경제적 활황 시기에는 모두 즐거운 기분이기에 서로 다투지 않지만, 불황 때는 모두 스트레스를 받으며 위협적인 파멸에 맞서려는 분노의 에너지가 넘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스트레스를 장기간 받으면 이성적인 인간으로서의 모든 윤리를 잊어버리고, 매우 단기적인 시각속에서 자신만의 성공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몰락의 소용돌이로 끌고 들어가게 된다고 강조한다.
즉, 좋은 시절에는 경제학 이론에서 말하는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란 가정이 통하지만, 좋지 않은 시절에는 비 이성이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것들을 경제 이론과 사례들로 입증하는 예들을 소개하고 있다. 비단 최근의 행동 경제학 뿐만 아니라 1960년대 MIT 슬로언 경영대학에서 개발한 "맥주게임"을 통한 시장 모의실험, 미국 경제학자 조지 에커로프가 주장한 이른바 "레몬시장" 연구에서 결론 내린 것들, 죄수의 딜레마 문제,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며 일하기 싫어한다는 X이론과 인간은 능동적이고 의미를 추구하는 행동에서 삶의 가치를 보기에 자발적이라는 Y이론 등이다.
이 책에서는 호황기보다는 불황기에 인간의 심리와 조직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잘 묘사하고 있다. 무자비한 효율 증대가 전체적으로 통용되어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효율을 증대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던지, 노동을 효율로만 측정한다던지, 능률은 시간 단위당 투입되는 노동량을 말하며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도 없다는 이론이 팽배해진다던지, 최고의 직원은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면서 회사를 위해 온몸을 희생하는 직원이고, 승진은 에너지와 의욕 그리고 희생정신에 따라 평가된다는 것, 그리고 전체 경제가 수익성 위주로 가기 때문에 모든 부서, 그리고 개개인마저도 다른 부서 혹은 고객으로부터 자신의 성과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사람을 그냥 숨쉬는 자원으로 인식하고, 무자비하게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말이다. 기업에서는 CFO가 갈수록 압제자가 되어가고 저 성과자에게는 저승사자가 된다는 말 역시 가슴에 와닿는다. 가장 강력한 형벌은 "리뷰"라면서 직원들은 숫자로 된 보고서를 그에게 제출해야만 한다는 언급, CFO는 푼돈까지 간섭하면서도 본사와 똑같이 병든 다른 기업을 매입하는 데는 가볍게 수십억을 지출한다는 말도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전반적으로 현대의 중요한 경영방법론으로 언급되고 있는 최고지향, 공격적 비교, 순위매김과 순위주의, 구성부품화, 핵심에 대한 집중, 이윤 증대를 위한 실험적 튜닝, 블랙박스 가정 등은 경제를 끝없이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라 한다.
이런 것들은 직원들을 이 일에서 저 일로 투입할 수 있도록 여러 개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런 방식으로 비는 시간 없이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면서 끝없이 능률과 생산성을 강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경영 컨설팅도 중요한 수익원이라 할 수 있는 IBM의 고위직 간부가 목표관리, 전사적 품질관리, 고객관계관리, 업무재설계 등을 수행하는 컨설턴트들을 컨설팅 모리배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 부분도 재미있었다. 또한 당신이라면 수십만 유로가 들어갈 컴퓨터 아키텍처와 전산센터를 세우려고 할 때 그 프로젝트를 IBM에 발주하겠느냐면서 가장 싼 업체에게 맡길것이라는 정확한 지적도 하고 있다.
사실 이 암울한 상황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마지막 희망은 그다지 현실적이지는 않다. 저자 자신도 그 해결책이 결코 쉬운것이 아니라 언급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냉정함을 잃지 말고 불황이던 호황이던간에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가야 하며, 협력적이고 윤리적인 문화를 가꾸어가며 스트레스와 공격적인 경향을 강력하게 방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Web2.0의 문화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이상향을 위해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불황기의 한 가운데에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책 내용뿐만 아니라 이 책의 겉표지도 흥미롭다. 경제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에 인디언과 사자의 탈을 쓴 인간을 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언제나 들소 때의 규칙적 흐름에 따라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그들은 먹고사는 데 필요한 만큼만 들소를 죽임으로써 들소 개체수 변동을 최소화 시켰다고 한다. 반면 일반 육식동물은 항상 과소비를 하고 있기에 전체 먹이사슬에서 초식동물의 개체수 변화에 따라 불황기와 호황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지혜를 따라 과욕을 부리지 말고 극심한 불황과 극심한 호황에 대비하라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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